강신욱 단국대학교 명예교수
강신욱 단국대학교 명예교수

한참 전 일이다. 20년도 넘은 것 같다. TV에서 우연히 본 내용이다. 유럽 청소년들의 수학 경시대회가 열렸는데 영국 고등학생들이 최하위를 차지했다. 영국 교육계가 발칵 뒤집혔는데 최종 내놓은 방안이 의외였다. 국어 교육과 스포츠 교육을 강화한다는 내용이었다. 영국을 해가 지지 않는 나라라고 칭했던 이유를 수긍했던 기억이 있다.

역대 우리나라 체육계 담론 중 지금까지도 뜨거운 것의 하나는 학교 체육 문제다. 입장에 따라 시각과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문제의 두 가지 큰 영역은 정과체육활동인 학생들의 체육수업과 과외 자율활동의 대표적인 운동부의 문제다. 교육부를 중심으로 교사, 교수, 그리고 일반 국민들은 주로 초중고 체육수업의 내실화에 관심을 두는 반면 문체부, 대한체육회, 그리고 운동부 지도자와 학부모들은 주로 학교 운동부의 활성화에 공을 들여왔다. 전자의 경우 건강한 사회 구성원 양성을 목표로 하고 후자의 경우 유능한 경기인 양성을 목표로 함은 두말할 나위 없다. 학교 운동부 활동이 늘 사회적 이슈를 선점하기 때문에 체육계에서조차 일반학생들의 운동권은 일시적인 관심, 혹은 무관심하게 방치돼 있는 게 사실이다. 그러나 국가 미래를 감안할 때 일반 학생의 건강과 운동은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함이 없다.

체육수업에 사회가 관심을 갖는 가장 큰 이유는 신체적, 정신적, 사회적으로 건강한 시민을 만들기 위해 이만한 교육 수단이 흔하지 않기 때문이다. 후세대의 건강과 운동을 체계적, 계획적으로 교육할 수 있는 가장 훌륭한 수단이 바로 체육수업이기 때문이다. 18세기에 유럽에서 근대식 학교가 세워지면서부터 체육 교과는 위 목적을 실현하는데 필수적인 교과로 채택되었고 2백여 년이 지난 지금도 그러한 인식은 전 세계에서 더욱 강화되고 있다. 19세기 후반 주로 선교사들에 의해 근대식 학교가 설립된 이래 우리나라에서도 체육 교과는 초중등 교육과정에 누락된 적이 없다. 다만 근래에 오면서, 정확히 말해 20여 년 전부터 청소년들의 체육수업 시수가 현저히 줄어들고 주지 교과로 체육 수업을 대체하는 등 가뜩이나 부실한 청소년 신체 교육을 심화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그야말로 시대를 역행하는 비교육적인 처사가 우리나라 학교 현장에 계속되고 있음에도 교육계나 체육계의 비상한 개선 노력은 미흡하기 이를 데 없다.

현재 체육수업 시수는 초등학교의 경우 3학년~6학년까지 주당 3시간이고 1, 2학년은 '즐거운 생활' 교과에 포함되어 있다. 중학교의 경우 1, 2학년 주당 3시간, 3학년 2시간이고 고등학교의 경우 1, 2학년의 경우 주당 2시간, 3학년 1시간이다. 이 정도는 대학입시에 억눌려 있는 성장기 청소년의 정상적인 발달을 위한 최소한의 신체활동 시간으로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참고로 OECD 가입 38개 국가 중 우리나라보다 주당 체육수업 시수가 적은 나라는 브라질 등 7개국 정도다. 아이슬란드, 노르웨이, 미국, 일본, 캐나다 등은 중고등학교 주당 체육수업 시수가 4~5시간이다. 물론 영국과 프랑스는 우리보다 체육수업 시수가 조금 적은데 이들 나라는 방과 후 체육활동이 대단히 활발하다.

우리나라도 부족한 정규 체육수업 시수를 보완하기 위해 2012년에 최초로 방과 후 스포츠클럽 시수를 중학교의 경우 주당 2시간 정규 교과로 운영하였다. 당시 이 스포츠클럽 활동을 교육부가 교육과정 개정 고시를 통해 긴급 도입한 이유는 중학교에서 학폭과 자살률이 증가했기 때문이다. 그러던 것이 2022년 교육과정에서 스포츠클럽 시수를 주당 1시간으로 줄이면서 중학생의 정규 체육수업 시수가 다시 줄어들게 되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2023년 10월에 교육부가 학생건강증진 5개년 계획 발표를 통해 초등 1, 2학년 즐거운생활 교과에서 체육교과를 분리하고, 2022년 교육과정에서 줄인 중학교 학교스포츠클럽 시간을 원상 복귀 시키겠다고 한다. 현재 이 계획은 국가교육위원회에 상정되어 있다. 지난 1월 16일 대한체육회가 전국의 체육인을 소집해 거창하게 '체육인대회'를 개최하길래 학교 체육의 이런 시급한 현안 등을 정부에 건의하는 줄 알았더니 그게 전혀 아니었다. 참으로 아쉬웠다. 대한체육회장은 교육부, 교육청, 국가교육위원회 등에 발에 땀이 나도록 다니셔야 한다. 자꾸 엉뚱한 데서 힘자랑하지 마시고 민선 회장으로서 그런 일에 발 벗고 나서야 한다. 적어도 회장이 체육인들의 선거로 선출된 대표라고 생각한다면 말이다.

한참 운동해야 할 고등학생들의 경우도 3학년까지 주당 2시간은 최소 체육수업 시수를 배정해야 한다. 주당 1시간 늘리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닌 만큼 국가의 미래 대계를 위해 긍정적인 여론이 형성되도록 체육계는 혼신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필요하다면 토론회, 캠페인, 언론, 국회, 체육단체 모두의 힘을 모아야 한다. 학교 체육이 중요하다, 학교 체육을 발전시켜야 한다고 입에 발린 소리 하지 말고 진정성 있게, 그리고 전문적으로 이 문제를 풀어야 한다. 국가체육위원회가 발족된 만큼 위원회는 좀 더 적극적으로 체육인들과 소통하고 미래의 대한민국을 위해 정부 정책이 바로 서도록 어젠다를 꼼꼼히 설계할 것을 진심 권한다.

아울러 교육 현장의 교사, 교수들은 좀 더 분발하셔야 한다. 여러 가지 부족한 환경이고 잘 하고 계시지만 좀 더 성실한 수업 진행으로 교과의 질과 격을 스스로 높여야 한다. 각 교육청도 체육수업이 교내 행사나 주지 교과 교육으로 대체되는 일이 없도록 늘 살펴야 하며, 학교 운동장이 주말에 꽉 잠기지 않도록 각별한 행정 지도를 계속해야 한다. 경험에 의하면 하드웨어의 부족함은 소프트웨어나 특히 휴먼웨어의 성실함으로 충분히 이겨낼 수 있다. 출산율이 좀처럼 회복되지 못하고 있는 시점에 미래 우리 사회 주역들의 건강한 삶을 위해 정부와 체육인들은 좀 더 계획적으로, 그리고 열정적으로 고민하고 봉사해야 한다고 본다.

(글 : 강신욱 단국대학교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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