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가정의학과의원 이상훈 원장
삼성가정의학과의원 이상훈 원장

양귀비꽃은 강렬한 아름다움이 있다. 진통, 진정의 약효도 뛰어나다. 양귀비 열매 즙액은 마약인 아편의 원료가 된다. 양귀비꽃은 중독성 있는 아름다움이 있는 셈이다. 사람의 혼을 쏙 빼는 아편처럼 인간 양귀비(719~756년)도 우여곡절의 삶을 산다. 당나라 황제 현종이 첫눈에 반한 그녀의 매력은 지극히 치명적이었다.

양귀비꽃은 마약법이 적용되는 습관성 의약품이다. 마약에 빠지면 헤어 나오기 쉽지 않다. 현종도 그랬다. 미모의 양귀비를 본 현종은 늘 그녀를 찾아야 했다. 그녀에게 중독되어 갔다. 그는 자발적인 가스라이팅(gaslighting)을 선택했다. 그녀 앞에 선 남자는 이미 위풍당당한 당 제국의 황제가 아니었다. 여인의 치마폭에서 자주성을 잃은, 심리적으로 지배당해 자기 결정권이 결여된 남자였다.

이는 반인륜 행위로 이어진다. 현종은 아들의 아내를, 자신의 후궁으로 삼는다. 이는 여자에게도 비극의 시작이었다. 이처럼 아름다움은 때로는 독이 될 수 있다. 빼어난 미모 탓에, 양귀비는 인륜에 반하는 삶을 산다. 아들의 연인에서, 아버지의 여자로 살아간다. 결국 나라도 파탄에 이르게 하는 단초를 제공한다.

경국지색(傾國之色)인 양귀비의 본명은 양옥환(楊玉環)이다. 일찍 부모를 여윈 양귀비는 쓰촨성 관리인 숙부 밑에서 자란다. 눈에 띄는 외모에 춤과 노래, 글에도 재주가 비범했던 그녀는 17세에 현종의 아들인 수왕(壽王)의 아내가 된다.

황제 아들의 연인으로 행복한 나날을 6개월 쯤 보냈을 때다. 환관인 고력사가 그녀를 연회장으로 불러냈다. 현종을 위한 술좌석이었다. 현종은 총애하던 무혜비를 잃은 뒤 적적해하고 있었다. 이에 고력사가 장안에 소문난 미녀 양귀비를 술자리에 합석시킨 것이다.

그녀의 외모, 춤과 노래 솜씨, 언어를 접한 현종은 넋을 잃고 허우적거렸다. 56세의 현종은 22세의 양귀비에게 사랑의 포로가 되었다. 현종은 그녀를 도사로 출가시키는 편법을 동원한 끝에 후궁으로 삼았다.

여인에게 빠진 황제는 예전과는 다른 사람이 되었다. 당나라 현종 때는 중국 역사에서 손꼽히는 태평시대였다. 현종의 선정(善政)으로 평화가 지속됐고, 수도인 장안은 국제도시로서 위용을 자랑했다. 시인 이백과 두보, 화가 왕유 등이 활동하던 시대로 문화적으로도 크게 융성했다. 그렇기에 중국사에서는 이 시기를 현종의 연호를 빌려서 ‘개원의 치(開元의 治)’, '개원천보시대(開元天寶時代)'라며 높게 평가하고 있다. 하지만 말년의 현종은 이 같은 업적을 휴지 조각으로 만들었다.

양귀비와의 사랑놀이에 나라의 곳간이 비고, 백성의 원성이 높아지고, 국방이 무너지는 것을 몰랐다. 결국 절도사인 안록산의 난으로 당나라는 내전 상태에 들어간다. 황제를 칭한 안록산은 양귀비의 후원으로 출세했다. 9년간 지속된 이 난으로 나라는 극히 황폐화 됐고, 백성은 3천 만 명 이상이 숨졌다.

안록산의 난이 일어나자 현종은 양귀비와 함께 도성을 빠져 나왔다. 이때 상당한 군권을 쥐고 있던 양귀비의 오라버니 양국충이 군사들에게 살해됐다. 양국충을 제거한 세력들은 현종에게 양귀비를 죽이라고 압박했다. 군사들이 두려웠던 현종은 목숨 부지 방법으로 연인을 버렸다. 자살을 강요받은 양귀비는 불당에서 목을 매 죽는다. 나이는 37세였다.

미모가 인생의 독이 된 양귀비의 외모는 어땠을까. 양귀비는 서시, 왕소군, 초선과 함께 중국 4대 미녀로 꼽힌다. 그녀들의 아름다움은 침어낙안 폐월수화(浸魚落雁,閉月羞花)라는 극적인 표현으로 설명된다. 침어는 서시, 낙안은 왕소군, 폐월은 초선, 수화를 양귀비를 상징한다. 풀이하면 "서시의 미모에 빠진 물고기가 헤엄치는 것을 잊어 가라앉았고, 왕소군의 외모에 기러기가 날갯짓을 잊고 떨어졌다. 초선의 아름다움에 달이 부끄러워 숨고, 양귀비의 매력에 꽃이 부끄러워했다"는 뜻이다.

꽃이 시샘하고 부끄러워할 정도였던 그녀에게 쓰인 표현은 자질풍염(資質豊艷)이다. 풍만하고 농염하다는 뜻이다. 이는 둥글고 통통한 체형에 성적 매력이 뛰어났음을 의미한다. 현종의 후궁인 매비는 양귀비를 비비(肥婢)라고 비난했다는 설이 있다. 살찐 종년이라는 욕이다. 이를 보면 양귀비는 통통하고 둥근 체형에 흰 피부를 지닌 여인으로 추측된다. 지금 시각으로는 비만이다. 당시에는 마른 여인보다는 통통하게 살집이 있는 여성이 미인으로 각광 받았다. 이처럼 미인관은 시대와 사람마다 다르다.

(글:삼성가정의학과의원 이상훈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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