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가정의학과의원 이상훈 원장
삼성가정의학과의원 이상훈 원장

서양 역사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미녀는 누구일까. 아마 클레오파트라(B.C 69~30년)일 것이다. 유럽 문명의 시원인 고대 이집트나 고대 로마와 연관되면 그녀의 이름이 자연스럽게 나온다. 매혹적인 그녀의 아름다움을 많은 이가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어 찬미했다.

그리스의 역사가 플루타르크는 그녀와 로마의 지배자 안토니우스와의 만남을 상세하게 묘사했다. 프랑스 수학자 블레즈 파스칼은 명언으로 그녀를 불멸의 스타로 각인시켰다. 파스칼은 저서 <팡세>에서 "클레오파트라의 코가 3mm만 짧았다면 지구의 표면이 변했을 것"이라고 했다.

클레오파트라는 역사의 인물이며, 동시에 신화의 주인공이다. 이집트의 여왕, 로마 지배자 카이사르와 안토니우스 유혹, 비참한 최후 등은 역사의 팩트다. 그러나 고혹적인 매력녀 이미지는 사후에 예술가들이 만들었다. 그녀의 시대를 뛰어넘는 미모는 확인할 수 없는 상상 속 이미지일 수 있다. 신비의 여인, 클레오파트라의 아름다움에 대한 궁금증 세 가지를 탐색한다.

첫째, 그녀의 외모다. 그녀는 2천 년 가깝게 서구형 미인으로 인식됐다. 고대 로마의 역사가 디온 카시우스는 클레오파트라를 도저히 거부할 수 없는 마력을 지닌 최고 미녀로 추앙했다. 그는 클레오파트라 보다 불과 200년 뒤의 인물이다. 이는 당시 로마에 클레오파트라의 미모가 전설처럼 내려왔음을 의미한다.

또한 그녀의 모습으로 추정되는 유물들은 한결같이 늘씬한 미인상이다. 근세에는 영국의 문호 셰익스피어가 그녀의 아름다운 매력을 글로 토해냈다. 영상 매체인 현대 영화에서는 엘리자베스 테일러 같은 미모의 여배우가 클레오파트라 역할을 맡았다. 아름다운 그녀에 대한 시각은 변하지 않는 진리처럼 인식됐다.

그러나 2001년 영국 대영박물관의 클레오파트라 특별전을 계기로 고정관념이 일부 무너졌다. 새로 발굴된 유물 등이 포함된 이 전시회에서도 그녀를 상징하는 유물 상당수는 고혹적이고 아름다움의 극치였다. 그러나 그녀가 살았던 시기의 유물에서는 다른 모습도 보였다. 근엄하지만 평범한 얼굴에 긴 매부리코, 고르지 못한 치열, 150㎝ 정도의 작은 키, 살찐 목덜미, 통통한 몸매의 작품이다. 수많은 예술가가 찬미한 미모와는 상당한 거리가 있었다.

이에 대해 옛 시대의 매력녀는 날씬함 보다는 통통함이라는 시각도 있다. 또 그녀의 매력을 뇌쇄적인 외모 보다는 다양한 언어 구사와 변화무쌍한 화술에서 찾기도 한다. 빼어난 화술의 지성적 아름다움이 돋보였을 것이라는 풀이다.

둘째, 그녀의 인종이다. 그녀는 전형적인 서구형 미인으로 인식되었다. 그런데 그녀의 여동생인 아르시노에로 추정되는 무덤 인골의 해부학적 특징이 흑인과 유사했다. 만약 그 무덤의 주인공이 아르시노에가 맞다면, 그녀의 어머니는 흑인이라는 결론이 나온다. 클레오파트라의 어머니 트뤼파에나는 그리스계다. 그러나 명확하지는 않다.

분명한 것은 아버지가 그리스계인 백인이다. 클레오파트라는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의 마지막 파라오다. 이 왕조는 300년 전에 그리스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친구이자 부하인 프톨레마이오스가 개창했다. 이후 그의 후손이 대대로 파라오가 되었다. 실제로 이집트 파라오들의 이미지는 모두 유럽 백인형에 가깝다. 이를 감안하면 클레오파트라는 그리스계 백인임이 유력하다. 다만 희박하지만 아프리카계 흑인의 피가 섞였을 개연성은 있다.

셋째, 코의 비밀이다. 파스칼은 그녀의 코가 조금 낮았으면 세계 역사가 바뀌었을 것으로 보았다. 코는 얼굴의 중심으로 호감을 결정하는 중요 요인이다. 파스칼은 단순히 코의 위치나 형태, 크기를 논한 것이 아닐 수 있다. 종교적, 문화적 측면으로 이해했을 수 있다. 고대 이집트는 향료 문화가 극히 발달했다.

이집트인에게 향은 신과 인간의 매개체였다. 향을 신의 눈물이나 땀으로 여겼다. 파라오들은 신과 소통하기 위해 엄청난 향료를 구입했다. 특히 클레오파트라는 향에 취한 여인이다. 자신만의 '커피향'을 즐기고, 전용 유람선은 장미로 장식했고, 목욕은 향유로 했고, 침실은 꽃향이 진동하게 했다.

이 같은 환경에서 그녀는 안토니우스를 고혹적인 자태로 유혹했다. 클레오파트라는 향에 익숙해 이성적 판단이 가능했다. 반면 향에 후각이 마비된 안토니우스는 최음 상태가 되었다. 그 결과 위대한 장군이 아닌 사랑의 포로에 불과했다. 만약 그가 장미향에 취하지 않았다면 세계의 역사는 달라지지 않았을까. 파스칼이 말한 클레오파트라 코의 높이를 문화적 배경으로 풀이하면 새로운 스토리를 엿볼 수 있다.

(글 : 삼성가정의학과의원 이상훈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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