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가정의학과의원 이상훈 원장
삼성가정의학과의원 이상훈 원장

프랑스의 문학가 빅토르 마리 위고(Victor Marie Hugo.1802~1885년)는 개성 강한 휴머니스트다. 프랑스인에게 그의 위상은 가히 절대적이었다. 그의 80세 생일이 임시 공휴일로 지정 되고, 장례가 국장으로 치러질 정도였다. 서양 문학사에서 영향력이 극히 강한 그는 시인, 극작가, 소설가, 정치가로 활동했다. 주요 작품은 레 미제라블, 노트르담의 꼽추, 바다의 노동자, 웃는 사나이 등이다.

그는 프로 의식이 강했다. 작품을 쓸 때는 찬물에 샤워를 하고, 두발을 단정하게 다듬었다. 수염을 깔끔하게 민 뒤 작업하는 습관이 몸에 배었다. 그만의 글을 쓰는 의식이었다. 그에게는 남성 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이 극히 많이 분비된 것으로 보인다. 테스토스테론 분비가 많으면 적극적이고 열정적일 가능성이 높다. 성적인 활동도 왕성한 경향이 있다.

많은 여성과의 만남을 즐긴 그는 노령에도 관심이 줄지 않았다. 68세에 쓴 메모지에는 여성, 가슴, 키스, 나체 등을 뜻하는 은어가 적혀 있다. 빅토르 위고는 70대에도 ”세 번, 네 번 사랑을 나누는 것보다 한 번 연설하는 게 힘들다“고 말할 정도로 연애를 즐겼다. 그는 83세에 세상을 마감했다. 숨지기 넉 달 전 일기에는 그날의 사랑횟수가 기록돼 있다.

쾌락주의자인 그는 죽음을 앞두고 손자 조르쥬에게 말했다. ”사랑해라, 사랑해라, 실컷 사랑해라.“ 이는 낭만주의자 빅토르 위고의 평생 삶의 방향이기도 했다. 성에 집착해 수많은 스캔들을 양산한 그는 역설적으로 아내와 결혼한 스무 살 까지는 경험 없는 순수 총각이었다.

아내는 소꼽 친구인 에델 포셔. 공교롭게 아내는 형 유진으로부터 청혼을 받은 상태였다. 정신적 삼각관계 탓에 그의 형 유진은 정신병원에 입원한다. 아내 아델도 얼마 후 위고의 친한 친구인 작가 새트 뵈브에게 마음을 빼앗긴다. 빅토르 위고는 19세기 상당수 프랑스 예술인들처럼 성에 심각한 무게감을 두지 않았다. 그는 평생의 연인 줄리에트를 만나면서도 레오니 비아르 등 여러 여인과 교제했다.

지금 시각으로는 품행에 문제가 있다는 비난을 받았을 그는 이중적인 의식이 있는 듯했다. 자신에 대한 사랑과 연민, 사람에 대한 사랑과 연민이 미묘한 감정으로 복합돼 있다. 삶의 길은 반전으로도 비쳤다. 정치적으로는 왕당파에서, 열혈 공화파로 변신했다. 한 가지 신념을 꾸준히 밀고 가기 보다는 상황에 따라 입장을 바꾸었다.

하나의 시각, 하나의 철학이 절대적이지 않음을 깨달은 것으로 풀이할 수 있다. 이는 그의 철학적 표현에서 유추할 수 있다. ”망원경이 끝나는 곳엔 현미경이 시작된다. 어떤 게 더 넓은 시각을 가졌는지 누가 말할 수 있는가(Where the telescope ends the microscope begins, and who can say which has the wider vision).“

그의 이중적 시각은 음식에도 나타난다. 인간의 보편적 가치관을 생각하면서도 귀족다운 우월함이 은근 내재돼 보인다. 대식가로서 많은 요리를 접한 그의 작품에는 음식이 자주 등장한다. 작품 속의 음식에는 인간애가 실려 있다. 문학가이자 정치가인 그의 글에서는 ’가난한 사람들이 음식으로 인해 존엄성을 잃어서는 안 된다‘는 메시지를 읽을 수 있다. 실제로 그는 생활이 어려운 집의 아이 수십 명을 주기적으로 초대해 먹거리를 제공했다. 상류층이 즐기는 음식을 나누었다.

또 한편에서는 고구마를 가난뱅이 음식으로 폄하하고, 포도주를 신이 준 선물로 찬양하는 모습도 보였다. 사회 모순에 손을 내저으면서도 스스로는 귀족이라는 선민의식을 다 버리지는 못한 모습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레미제라불에서 보여준 메시지는 강렬하다. 빵과 자유, 빵과 인간 존엄성에 대한 공론을 전 세계에 불러일으켰다. 그는 가난한 이에 대한 불공정한 대우, 사회적 모순에 대한 분노를 소설에 담았다.

그는 집필의 변에서 ”단테는 시에서 지옥을 그렸다. 나는 현실의 지옥을 표현하려 했다“고 밝혔다. 소설의 주인공 장발장은 7명의 조카와 누나 등 배고픈 가족을 위해 빵을 훔쳤다. 그에 대한 형벌은 5년형으로 가혹했다. 그는 탈출하다 잡혀서 19년간 투옥됐다. 비록 신부의 사랑 덕분에 새로운 삶을 살지만 장발장은 빵 하나 훔친 죄로 삶을 완전히 망쳐 버린 셈이다.

빵은 생명이다. 사흘 굶주린 사람이 선택할 방법은 무엇일까. 며칠을 굶은 사람에게 도덕과 양심을 논할 수 있을까. 이 같은 사회적 약자가 생기지 않도록 하는 게 지방자치단체이고, 국가다. 나라는, 사회는 시민의 최소한의 생존권을 보장해야 한다.

하지만 19세기 프랑스는 그렇지 않았다. 강자 독식 시대였다. 빅토르 위고는 소설 레미제라불에서 주인공 장발장을 통해 자유와 정의보다 더 앞서는 게 빵이고, 인간의 생명임을 그려냈다. 인간다운 최소한의 존엄성을 먹거리 확보에서 보았다. 이 메시지는 많은 나라의 사회보장제도의 근간을 이루고 있다.

빅토르 위고와 장발장을 생각하면 쌀 한 톨, 밀가루 한 스푼도 새삼 감사하게 여겨진다. 이 관점에서는 열량 높은 풍부한 음식 섭취로 ’육체 비만‘을 고민하는 사람이 상대적으로 행복하다고 할 것이다. 많은 사람이 이웃과 사회에 대한 생각이 넘치는 ’마음 비만‘ 사회를 그려본다.

(글 : 삼성가정의학과의원 이상훈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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