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동물의료센터 이승혁 내과 과장
아프리카동물의료센터 이승혁 내과 과장

몇 달 전, 한 보호자가 눈물 가득한 얼굴로 다급하게 고양이를 안고 병원으로 들어섰다. 보호자의 절박한 표정과 함께 응급 상황에 빠르게 대응하는 병원 스탭들의 움직임이 긴박했다. 하지만 다행히도 2년 11개월령의 페르시안 친칠라 고양이는 내원 당시 의식이 명료한 상태였다.

보호자는 고양이가 집에서 사냥놀이를 하던 중 갑작스럽게 움직임을 멈추고 서 있었다고 설명했다. 평소와 다름없는 식이와 활력에도 불구하고 갑작스러운 실신 증상은 수의사에게 혼란을 줄 수 있다. 소경련인지 실신인지 구분하기 어려운 초기 진료에서, 다양한 원인을 고려해 철저한 검사를 통해 정확한 진단을 내리는 것이 중요하다.

실신의 원인으로는 심장성 실신, 미주신경성 실신, 비실신성 허탈(전해질 불균형, 중독, 빈혈, 탈수, 저혈당, 발작) 등이 있다. 먼저 심전도 모니터링을 통해 고양이의 심장 리듬을 상세히 확인했다. 심전도 검사는 심장의 전기 활동을 기록하여 부정맥을 발견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검사 결과 동성 빈맥이 확인되었고, 이후 혈액 검사, 갑상선 기능 검사, 엑스레이 및 심장 초음파 검사를 통해 심장과 관련된 다양한 변수를 면밀히 분석했다. 다른 혈액학적 지표는 정상이었으나 심잡음이 청진되었고, situational hypertension과 Pro BNP 수치의 이상이 발견되어 초음파 검사를 진행했다.

초음파 검사 결과, 심실 중격과 심근 두께가 6mm 이상으로 측정되고 도플러 검사 상 e/a reversal이 확인되었다. 이러한 소견은 폐성 고혈압, 노령, 비대성 심근증(HCM)을 의심하게 한다. 대동맥에서 심방으로의 역류파가 확인됨에 따라 HCM의 한 유형인 폐쇄성 비대성 심근증(HOCM)으로 진단되었다. 좌심방의 크기가 19mm이고 La/Ao 비율이 1.6인 점을 고려할 때, 이뇨제의 투여는 이르며, 혈전 생성 고위험군에 속하는 HOCM으로 판명되었다.

이번 사례에서 고양이의 실신은 흥분 상태와 HOCM이 겹치면서 심장에서 나가는 혈류량이 부족해져 뇌로 가는 혈류가 감소했기 때문이다. 흥분 상태에서는 심박수가 증가하고, 비대해진 심실 중격이 대동맥으로의 혈류를 제한하여 실신을 유발할 수 있다.

비대성 심근증(HCM)은 심근의 비정상적인 비대가 특징인 질환으로, 유전적 요인이 주요 원인으로 작용하며 고양이 심장질환의 90% 이상을 차지한다. 특히 메인쿤, 랙돌, 브리티시 쇼트헤어와 같은 특정 품종에서 흔히 발생한다. HCM의 심각한 형태 중 하나인 폐쇄성 비대성 심근증(HOCM)은 심실 중격이 비대해져 대동맥으로의 혈류를 부분적으로 차단하는 질환이다. 이는 심장의 효율을 감소시키고, 실신, 호흡 곤란, 운동 불내성 등의 증상을 유발할 수 있다. 진단 후에는 약물 치료를 통해 심장 부담을 줄이고 합병증을 예방하는 것이 중요하다.

정확한 진단을 바탕으로 이 고양이에게 베타 차단제와 ACE 억제제를 투여하고, 혈전 예방을 위해 항혈전제를 투여했다. 3개월이 지난 지금, 이 고양이의 보호자는 더 이상 실신으로 인해 눈물 흘리지 않으며, 고양이의 삶의 질도 병원 내원 이전만큼 좋아졌다. 고양이는 안정기 심박수를 120회로 유지하며, 다시 활발하게 움직이고 식욕과 에너지도 크게 개선되었다. 이제 고양이는 평소처럼 뛰어다니며, 보호자와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고양이의 심장 크기는 보통 3-4cm 정도로, 이 작은 공간에서 1mm 차이로도 HCM으로 오진할 수 있다. 따라서 정확한 진단을 위해서는 고사양의 정밀한 진단 장비를 갖춘 병원에서 검사를 받는 것이 중요하다. HCM과 같은 심장 질환은 지속적인 관리와 정기적인 검진이 필요하며, 이를 통해 반려동물의 건강을 지킬 수 있다.

(글 : 아프리카동물의료센터 이승혁 내과 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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